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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Sarah's diary 2023. 10. 2. 22:01

아침에 준이가 배고프다며 울면서 깼다. 빨리 밥 달라고 엉엉 울려고 하길래 얼른 일어나서 어떻게든 주려고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잘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불고기에 콩나물에 멸치에 이것저것 챙겨가지고 밥을 차려줬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정말 잘 먹어서 신기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5시쯤 고기 몇 점을 먹은거 말고는 제대로 저녁식사를 하지 않아서 그럴만도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가장 많이 배우게 되는 것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인 것 같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야 했는데, 배고프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밥을 달라고 하게 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하지만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되고, 줄 밥이 없는 것도 아니니 너무 극적으로 생각하지는 말기로 했다. 

 

슬픔을 위한 슬픔, 고통을 위한 고통, 괴로움을 위한 괴로움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란 생각을 한다. 아침식사를 어떻게 해 내고 정리한 후에 시계를 보니 8시 반이었고 바로 놀아달라는 준이를 뒤로하고 좀 누웠다. 티비를 보여줄 때마다 죄책감이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또 동시에 죄책감도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에는 마음을 지나치게 쓰지 않기로 했다. 이 사실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할 것 같아서 계속 다시 생각하고 되뇌였다. 약을 타와야겠다는 생각에 병원에 갔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휴무일이었다. 인터넷에 고지된 바와는 달라 실망스러웠다. 병원 근처에서 현에게 전화를 했고 걸어서 15분쯤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을 봤고 오랜만에 한가로이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대찌개를 먹었고, 준이는 고기를 주고 라면을 끓여줬다. 

 

조금이라도 놀아주려 했는데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또 이불을 털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는 동안 몸이 완전히 다 지쳐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책이라도 한 권 읽어주려 하는데 그 한권을 읽어주다 잠이 들었다. 준이가 엄마 정신차려! 라고 소리를 질렀었나? 멘트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던 것 같다. 너무 피곤했지만 렌즈세척액을 사야 했기에 챙겨가지고 나갔다.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을 사가지고 돌아와서 백김치피클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해서 준비해서 나갔다. 섬에서 빠져나오는 차들이 많아 걱정이었는데 도착해서 카페에서 여유롭게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너무 많아서 두시간 남짓 도로에서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잘못한 게 있는 것 같다고 인지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럴 때 참지 못하고 쏟아낸 것이 부끄러웠고 햇살을 맞으니 금방 마음이 추스려졌다. 그래서 조금은 극복이 되었다고 해야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잘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덜 하고 불안감은 조금 덜 있고 그런 상황에서 내 잘못에 대해서도 차분히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이 쌓여가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분명히 약물은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를 테면 다희씨와 이야기하던 날 내가 스스로에게 원한다고 느꼈던 것, 확실히 내가 스스로에게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건강한 상태의 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신체만이 건강해서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고 분명히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하는데 두가지가 다 불가능했던 모습이기에 힘들었던 것 같다. 

 

알콜은 입에도 못 대면서 피부톤은 전에 없던 술톤이었던 나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여전히 가공식품을 자주 챙겨먹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땡기는 날도 있지만, 스스로가 최선을 다해 루틴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나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하나를 얻고 그 하나를 얻게 되면 그 다음것들을 얻는 방법들이 눈에 보인다. 인생이란 사실 그렇게 계단처럼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들이 있으면 진하게 얻어지는 것들이 분명히 뒤따른다. 나는 17년부터 지금까지 실패한 인간관계 만큼이나 더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었고 그 사람들을 온전히 얻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이 잠시나마 나에게 머물러주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그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마음속의 미움이나 죄책감, 증오, 환멸, 질투, 시기, 혐오 등을 최대한 비껴가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마음속에 있는 감사한 마음, 고마운 마음, 다행스러운 마음, 사랑스러운 마음, 그리운 마음, 애틋한 마음,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그런 긍정적인 마음들에 대해서 더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나 스스로에게 감사하기로 한다.

 

잘못한 것들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고, 용기 내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고, 같은 잘못들이 반복되더라도 노력하겠다는, 의미없는 외침이 아닌 진심담은 말들을 꺼낼 수 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유하는 일과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용서하고 하나의 잘못에 늪에 넣을 것이 아니라 내일은 또 다시 나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를 용서하고 진득하게 마주할 것.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일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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