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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5

Sarah's diary 2023. 9. 5. 22:07

은지가 그랬다. 어차피 지나가고 일어나 버린 일들은 후회하고 곱씹어도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사실이 그랬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무엇도 나를 보호할 수 없다고 느끼던 순간조차도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강하게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나는 모든 대화에 내가 우선적으로 있었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혹은 제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산부인과에 갔다. 샤론언니와 닮은 그 의사선생님은 무해한 말투와 눈빛으로 꽤나 사무적이게 진료를 잘 봐주셨다. 적당히 친절했고 적당히 자세했다. 자궁에 근종이 몇개가 보인다고 했다. 보통 1-2센티 정도 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안좋은 쪽으로 커지면 이런 부분들은 수술을 통해 제거해야겠지. 지난 2012년 이후로 자궁이나 난소 관련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기에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인데, 그래도 확실히 간 김에 경부암 검사까지 모조리 하고 돌아왔다. 날이 너무 습하고 더웠다.

 

산부인과 위치가 지하철 역과 역의 정확히 가운데에 위치했기에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걸어서 갔는데 병원진료 받는 도중에 팀장님께 연락이 왔다. 점심 먹자고. 그래서 다시 다음 역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였다. 견디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도착해서는 이선생님의 차를 타고 학원 근처까지 갔다. 냉면과 전골을 파는 곳에 가서 전골을 먹었다. 선생님들은 밥을 안 드셨는데 혼자 한공기를 싹 비웠다. 부대찌개같은 음식을 먹을때 무조건 밥을 먹는다. 유난히 짠 맛이 강하고 매운 맛도 심했다. 자극적인 음식들이 예전만큼 땡기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은 우울할 거라는 운세를 본 것 같다. 그 탓이었는지 조금 차분해졌다. 아니면 이것도 약 때문인지 모른다. 아무려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매일같이 연락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게 조금 더 생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오랜만에 따돌림 당하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소환했다. 그리고 공교육 멈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다소 놀랐지만, 차차 그런 마음들을 좀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나같을 수 없다.

 

이선생님이 주셨던 책중에 가장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을 골랐다. '말센스'. 저자는 셀레스트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오래전에 동생이 추천해준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니콜키드먼이 셀레스트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것 같은데.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아무튼 그 책에는 대충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를 참아 낸다'라든지 '선생님이 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라는 글들이 너무 가까이 와 닿아서 뼈를 때렸다.

 

두번째 챕터 아래 달린 글은 거의 내 이야기였다.

 

"왜 사람들은 상대가 물어보지 않는 것조차 길게 설명하려고 할까? 그 이유는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상대에게 충고나 조언을 함으로써 그 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고(통제병),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로부터 관심이나 인정을 받고 시은 것이다.(관심병)"

 

이 구절을 몇번이나 다시 읽고 이보다 더 나같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벙쪘다. 더운 와중에도 몇 페이지를 더 뒤적거릴만큼 중요하고 가슴을 울리고 정곡을 찌르는 내용들이 나에게 전해지면서 나에게 센스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울적함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제는 그저 그런 시간들을 마음을 복습하고 다잡는 기회들로 생각할 뿐이다. 나는 나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노력하며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뿐이다. 

 

오늘은 왠지 슬픈 마음보다는 차분한 기분이었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는 조금씩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관심가져주고 이해해주려고 할까.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분명히 해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오늘은 화를 덜 내려고 노력했고, 아마 내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웃으면서 삶을 맞이하기로 했다. 나의 기억속에 아이들에게 파닉스를 가르치며 손수 광대가 되었던 기억은 아마 스무살 언저리의 나의 기억속에서 상당히 오래 지속될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들로 나를 유지해야지. 삶을 놓지 말아야겠다. 

 

내일은, 조금 더 차분하게 하루를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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