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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4

Sarah's diary 2023. 9. 24. 21:17

하루가 빠르고 이틀이 빠르고 일주일이 빠르고 한달이 빠르고 일년이 빠르다.

 

벌써 예전회사를 퇴사한지도 꽤나 오랜시간이 흘렀고 나는 무엇을 공부했나, 어떤 것들을 배웠나. 적어도 1년전의 나보다는 많은 경험들과 생각들이 스쳐지나간 기분이 든다. 그리고 요즘 일기를 쓰면서 느껴지는 것들은 내가 대략 십여년전에 매일매일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던 시기처럼 뭔가 차곡차곡 마음의 무엇인가를 털어놓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오늘은 책장의 위치를 옮겼다. 책장의 위치를 옮기고 나니 내가 애초에 이 방으로 컴퓨터를 옮기려고 했을 때 하려던 구도가 드디어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나는 나만의 방이 필요했다. 그런 환경이 충족되지 못했기에 아마도 나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는 것, 책을 읽는 것, 일기를 쓰는 것, 정적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 뜨개질을 하는 것. 한동안 모두 놓고 살았다. 아니 한동안이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항상 치열하고 격렬했다. 지금은 차분히 하나씩 해내보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놓지 않으려는 것들이 있다. 책상 한 켠에 항상 있는 스누피 다이어리와 오늘 어쩌다가 펼쳐보게 된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이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패러디한 문학이라고 한다. 멋도 모르고 집어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번이다. 구입한지는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앞의 몇 페이지만을 읽은 채 표시해 둔 것을 오늘 집어들었다. 책장을 옮기다가 우연히 2017년, 2016년의 일기도 보았다. 그때의 일기가 나를 중간중간 굉장히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데 그때는 그야말로 정말 최악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아빠를 만났다. 은지도 만났다. 화정역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빠가 사주셨다. 그리고 아빠가 김이랑 카놀라유도 주셨다. 회사에서 받은 것 같았다. 식사 후 카페라도 갈 요량이었는데 괜히 돈 쓰지 말라며 그냥 가자고 하셨다. 그야말로 얼굴이나 보자는 모임이었던 것 같다. 은지도 돈을 줬고 아빠도 돈을 줬다. 준이 용돈이라며 전달해준 돈이 당장의 무엇인가가 되어야 할 정도로 고마웠다. 한달쯤 전이었나, 아니 2주쯤 전이었나 동생이랑 엄마한테 카톡으로 지금이 살면서 금전적으로 제일 힘든 시기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 한들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단순히 내가 무엇인가를 너무 사치해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리해서만도 아니고, 이런저런 원인들이 살면서는 존재하고 그것들을 단순히 무엇인가나 누군가의 잘못이나 어떤 행동 하나로 단정짓고 치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고 누구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에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는 이 다가온 여러가지 상황들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든 언제의 어떤 상황이든 무엇인가 탓을 돌린다는 것이 큰 도움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필요한 일들은 분명히 있다. 나에게 해야할 것들은 분명히 있고. 그리고 매일 써야 하는 생각들과 마음들이 있다. 오늘은 운전하는 현에게 이야기했다. 약을 먹고 나서부터는 내가 확실히 정말로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그랬더니 현도 그런 거라면 다행이라고 했다. 본인은 잘 못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내가 많은 것을 놓고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신경안정제의 덕이겠지. 나는 이번에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에게 2017년부터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었던 이력이 있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효과를 본 느낌이 아니었다고 말했었다.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들이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분명 어떤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식욕억제제를 함께 복용하면서 부작용이 너무 과했기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을 뿐인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최악이었다. 현도 그것을 기억했다. 오늘은 화정역에 갔었는데, 그때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어떤 사람이 소개해준, -단지 여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단순하게 찾아갔던- 정신과가 있던 동네를 다시 갔다. 유은이를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외의 여러가지 17년도의 기억이 나타나서 다소 오묘하고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길게 가지 않았다. 나에게 최악이었던 해는 분명히 그 전년도와 그 해였고 다시 그런 해들이 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때의 나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오늘 책장정리를 하고 읽은 책과 읽지 못한 책들을 구분하고 기리노 나쓰오의 책들을 많이 보았다. 특히 그로테스크. 혜린이 생각이 많이 났다. 혜린이는 내 삶에서 아마 지울 수는 없는 사람이 될 것 같다. 짧지만 정말 강렬했고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여전히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내 뜻과는 다르게 멀어진 인연들은 그저 마음으로 존경하고 잘되기를 바라기로 했다. 살면서 더 많이 느끼는 것들은 당장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도 항상 다 내 뜻대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하물며 타인과의 관계나 모든 세상 돌아가는 것들은 다 그렇다. 그저 내 맘에 좋게 남은 사람들은 언제까지라도 잘 지내길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들의 몫이지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해도 그것은 내 잘못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최악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계속적으로 불안해하고 괴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그래, 최악이었다. 그리고 내 잘못을 알고 받아들인다면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 애쓰며 살면 된다. 과거의 내 과오를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다가 어쩌다가 잊고 살아갈 순 있어도 그 기억이 계속 나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힌다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느니만 못한 삶이라 생각했다. 그로 인해 계속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한다면 아무리 제대로 인정하고 반성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이란 나아가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 그 발전속에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그것을 계속 마음에 담고 괴로워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 나에게 주었던 좋은 에너지들, 시간들, 말들, 그리고 마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최악의 시간들을 스스로 글을 쓰며 버텨나갔던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나는 가만히 나를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스스로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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