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기적적인 일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1일부터 지금까지 유지를 해내고 있다. 매일 기록을 남기는 일 말이다. 다행히 매일 같은 시간에 나는 일기를 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것, 그리고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마음이 많이 든다는 것, 내가 혼자서 해야할 것들이 많다고 느끼는 것,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지만 무엇을 하든지 나는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아껴주기로 했다. 새로운 기분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오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는 없으나, 나는 어쩐지 온전히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든다. SNS는 나의 생각들을 짧게나마 계속 남기던 공간이었다. 인스타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꽤나 자주 들락거렸고, 트위터는 거의 매일 흔적을 남기곤 했었는데, 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운세결과를 우연히 아침에 보고서는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길을 걸었었다. 땡볕이었지만 자전거를 끌며 등원을 시켰고, 자전거를 끌고 걸어오면서 준이 친구들을 만났다. 나를 알아보는 모습에 반가웠다. 난 아직 아이들을 제대로 존중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아이들은 아직 저를 잘 모르니까요-라고 웃으면서 아이들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마 그분은 내 행동이 무례하다고 느꼈을지도 몰라서 오늘 어제의 행동을 곱씹으며 후회가 됐다. 하루를 되짚는 건 나에게 어쩌면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자면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고 사업이 망한 고3때보다, 내내 가난에 쫓겨 허우적대던 이십대보다, 인간으로서 저지르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회사에..
은지가 그랬다. 어차피 지나가고 일어나 버린 일들은 후회하고 곱씹어도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사실이 그랬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무엇도 나를 보호할 수 없다고 느끼던 순간조차도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강하게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나는 모든 대화에 내가 우선적으로 있었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혹은 제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산부인과에 갔다. 샤론언니와 닮은 그 의사선생님은 무해한 말투와 눈빛으로 꽤나 사무적이게 진료를 잘 봐주셨다. 적당히 친절했고 적당..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새벽에 또 깼다. 새벽에 깨면 기본적으로 한두시간은 잠이 오질 않는다. 이런저런 무서운 것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잔인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 때가 부지기수다. 약을 먹어 주말 내내 기운이 없었던 것 치곤, 한밤중엔 생각보다 잠이 오지 않으니 약을 그만둘까 싶다가도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약 기운 덕이란 생각에 포기하기 힘든 건 여전한 밤이었다. 잠에서 깨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해독주스를 마시는 일인데, 당근, 비트, 사과, 양배추, 토마토, 브로콜리등을 삶아서 갈아마신다. 원래는 쪄서 갈아마셨는데 요즘은 그냥 물 양을 적게 해서 간단하게 삶는다. 비트 삶은 물도 조금 같이 주스에 넣고. 사실 주스라기보단 죽에 가까..
가을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때론 꽤나 덥고 때론 꽤나 춥다. 너무 오랫동안 이 더위에 질식해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이 마음들을 충분히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근육들을 충분히 이완시켜주지 않는 이상 굳어진 이 마음들을 이대로 가을에 내던질 수 없단 생각이 들었던 주말이었다. 약을 먹기 전에도 한두달에 한번, 아니 어쩌면 한달에 한번쯤 내 심신이 너무 지쳤을 때는 기운이 하나도 나지 않아 주말 아침에 식사준비하는 것도 놔버리고 그저 엎드려 누워 좀 더 잠을 청하려고 애를 썼던 날들이 며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자기 전에만 일주일이 넘게 먹고 있던 중이었고, 주중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인데다 지난 주말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오히려 약에 대한 의심은 해보지 못..
올해가 온 것도 믿기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그 해가 벌써 반도 넘겨 4개월만 남겨두고 있다는 게 확 와닿지 않아서 그렇지 벌써 계절은 조금씩 바뀌어가는 중이라 발목이 당기고 밤공기가 서늘해졌다. 다시 추워진다는 게 계절성 우울증 때문에 두려운 게 아니라 앞으로 내 마음을 오롯이 혼자서 책임지며 다스려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선생님께 감사드리는 일들이 종종 있었고 이선생님이 하시는 말씀들이 마음에 와서 박힐 때가 잦아서 늘 뭔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그래서 오늘은 수업중에 문득 아니, 어제였던가 이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쨍한 파란색의 실로 텀블러백을 만들어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톡을 드렸다. 텀블러 가지고 다..
어떻게든 꾸준히 일기를 쓰려고 한지 3일째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온지 일주일째라 병원에서 진료받으라는 문자도 왔거니와 가야 할 시기가 되어 준비하고 출발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뭔가 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무작정 기다리다가 애플저널을 꺼내서 글을 조금 썼다. -약을 받고 처음 3일간은 잠을 푹 잤다. 그런데 최근 3일간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중간에 깨면 두세시간씩 못 자고 설치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순간이 빨리 오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게 표출이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잦아지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인내심의 문제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일단 일주일치만 받고 일주일마다..
오늘은 선생님들과 브런치가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얼만큼 오랜만이었냐하면 아마 휴가 돌입하기 전에, 팀장님이 이혼하신다는 말씀을 전해들었던게 마지막이었나 싶다. 그게 내 기억으로는 지난 달 7월 28일쯤이었으니,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이었다. 그날은 그 소식에 대해 믿기지가 않고 갑작스러워서 다들 얼떨떨한 상태로 헤어지고 말았는데, 누군가의 이혼에 대해서 그 이상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떤 특별한 대처를 한다는 것도 오히려 이상했고. 그저 우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만나면 인사하고, 또 끝나면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오늘은 사회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고, 자식이 독립하고 나면 나도 죽을 준비를, 자식에게서 떨어져서 (짐이 되지 않게) ..